부끄럽지만 새해를 시작하며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본다.
내게 2021년 가장 큰 키워드는 아무래도 취업이 아닐까 싶다. 취업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하면서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자취방, 새로운 환경, 겪고 싶지 않은 출근길 지하철까지...
SI로 취업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SI로 취업에 성공했다. 인터넷에서 이미 안 좋은 소문은 들을 대로 듣고 가서 그런가,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물론 서비스 기업과 기술과 문화가 많이 다르지만, 배울 게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모르는 게 많은 것도 있겠지만
시스템 공통 부문 신입으로 입사했는데, 주요 업무가 애플리케이션 개발 환경을 구성하고 개발자들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배울 수 있는 건 많지만, 아무래도 내 업무가 다른 개발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어서 많이 부담되긴 했다. 그래도 다들 배려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여러 가지 일을 배울 수 있었지만 제일 큰 줄기 중 하나는 엑셀 다운로드/업로드 기능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개발자들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일이었는데, 선임분이 참고하라고 주신 것은 유틸성 함수로 작성돼있었다. 구글링 중에 배민 개발 블로그에서 엑셀모듈개발글을 읽게 됐는데,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했다. 바로 사수분께 기존의 엑셀 유틸 함수를 객체로 바꿔보겠다고 건의를 드렸고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진행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코드 외부 반출이 안돼서 주말에 가서 작업했던 적도 있었다. 개발자의 역량에서 설계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OOP와 디자인 패턴... 평생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어찌어찌 엑셀 기능을 마무리하고 잠깐 XML 파싱, 로깅 설정, 프로퍼티 설정, 테스트 코드 작성, 트랜잭션 제어, 메모리 테스트 등등 선임분이 알아보라고 지시했던 거 깔짝깔짝 했었다.
사실 SI 문화와 개발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이 많았는데, 막상 겪고 보니 다들 사정이 있고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SI에서도 계속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 그렇지 않다고 해서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가치관의 차이니까.
그래서 SI를 계속 다닐거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아니요"다. SI도 배울 건 많지만, 인터넷으로 가끔씩 접하는 서비스 기업의 개발 문화와 최신 기술 스택은 너무 경험해보고 싶다. 원한다고 이직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야지.
블로그
솔직히 말하면 창피한 글이 많은 블로그다. 남들처럼 이해가 잘 되게 글을 잘 적지도 못하고, 개발적으로 깊이 있는 글을 적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이 은연중에 계속 있다 보니, 뭔가 좋은 글감이 있지 않으면 묵혀두고 포스팅을 하지 않았다. 물론 이때까지 작성된 글이 좋은 글감이란 건 아니다. 아무튼 그런 부담을 덜고자, TIL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가볍게 꾸준히 쓰려했는데 생각처럼 잘 되진 않았다.
열정은 쓰레기다. 진짜는 시스템이다.
유튜브 EO 채널에 주니어 개발자들에 관한 얘기가 있길래 봤는데, 거기서 창천향로 이동욱 님이 말씀하신 책의 글귀다. 열정은 누구나 언제든지 가질 수 있다. 핵심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하느냐다. 특히 성장 가능성에 대한 근거를 보여줘야 하는 주니어 개발자에게는 더욱 중요하다는 문맥에서 하신 말씀이다.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내가 열심히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진 않았는지 나를 되돌아보게 만든 문장이었다. 내가 됐든 남이 됐든, 추상적인 열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은 결국 시스템을 만들고 잘 지키고 있느냐다.
오랫동안 포스팅하지 않은 블로그가 생각났다. 입 안이 쓰다.
스터디
우연히 자바봄에서 하는 스터디 문화를 보고 난 뒤, 항상 개발자로서 스터디를 해보고 싶었다. 스터디를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게 없어서 미루고 미루던 차에, 우연히 사내에 CS스터디가 있는 걸 알게 됐고 참가하게 됐다. 비전공자이다 보니 항상 CS 공부를 해야 된다는 마음 한 편의 짐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스터디는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하면 망한다는 소리가 많지만, 우리는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활용해서 나름 잘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확실히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같이 공부하는 게 좋다.
아마 지금 진행 중인 스터디가 끝나더라도, 다른 걸 찾아 계속해서 스터디 활동을 할 계획이다.
운동
취업을 하면서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평일 주 3회 월 12만 원 정도 하는데 가격은 비싸도 확실히 헬스보다는 재밌다. 특히 월수금은 킥복싱을 가르쳐주는데 미트칠 때 팡팡 소리 나는 게 은근히 스트레스가 풀린다.
헬스에는 재미를 못 붙였지만, 크로스핏에는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재미 붙인 쪽은 킥복싱인가?
6월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6달 했다! 이제 몸은 늙을 일만 남았는데 꾸준히 해서 더 늦기 전에 프로필 사진도 한 번 찍어 보고 싶다.
클라이밍도 재밌어 보이는데🤔 시간이 없네 ㅠ
개인 공부
한 해 동안 공부했던 것을 살펴보니 대부분 스프링이다. 기초가 많이 부족한데 기술만 냅다 배운 느낌이다. 특히 이번 CS스터디와 회사에서의 경험으로 내가 잘 모르고 기술만 쓰고 있었구나라고 많이 느꼈다. 상대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론적인 내용에 대해 개인적으로 집중해서 공부할 계획이다.
그리고 보다 보니 책 하나를 완독 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강의는 그래도 대부분 다 수강했지만, 책 같은 경우에는 중간까지만 읽은 게 한 3분의 1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읽을 책이 많은데 얼른얼른 읽어야겠다.
그리고 읽은 책을 블로그에 정리해볼까 생각 중이다. 최근에 네트워크 공부를 하면서 HTTP 완벽 가이드 책을 거진 반년만에 다시 봤는데, 처음 보는 내용이 너무 많았다. 읽고 정리를 안 하니 금방 휘발된다.
가장 도움이 됐던 오브젝트 책부터 다시 읽으면서 간단하게나마 블로그에 정리해볼 생각이다.
계획
효율적인 공부
열심히만, 그리고 꾸준히만 공부하면 좋은 개발자 되는 것은 가능하다.
개발자로 이직을 결심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다. 내 전공은 무역학과다. 그러다 보니 영어회화가 엄청 중요했다. 영어회화를 배워보려고 비싼 학원비를 지불해가며 열심히 했던 적도 있었는데, 결국 해외에서 살다 온 사람과는 경쟁상대가 못 됐다.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 있었기에, 평생 공부해야 하는 개발자라는 직업이 나에게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열심히만 하면 무조건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노력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공부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결국 모든 직업에 통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책보다는 인터넷 강의가, 인터넷 강의보다는 코드 리뷰 기반의 스터디가 훨씬 성장하는 느낌이 컸다. 취업 직전에 했던 프로그래머스 스터디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그렇다고 책이랑 인터넷 강의가 쓸모없다는 생각은 아니다. 서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성장의 폭을 봤을 때 그렇게 느꼈다는 이야기다.
"함께 자라기"라는 책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는데, "1만 시간의 법칙"이 있지만 절대적인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양치를 평생 하지만 양치의 달인이 되지는 않는 것처럼, 무지성 공부(노력)는 나를 성장시키지 않는다.
그 책을 읽고 공부방법에 대한 방향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확실히 코드 리뷰 기반의 스터디가 비싸지만,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머스 스터디도 취준생이었던 내게 부담되는 금액이었지만, 수강했던 것을 전혀 후회하진 않는다.
올해부터는 가격이 있더라도 코드리뷰 기반 스터디를 좀 더 적극적으로 수강할 생각이다. 요새 책을 같이 읽으면서 해석해주는 인터넷 스터디도 광고로 자주 봤던 기억이 있다. 가격도 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투자비용이라고 생각해야겠다.
알고리즘 공부
알고리즘 공부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최근에 알고리즘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좋은 회사들은 코딩 테스트를 토익처럼 지원자들의 준비물처럼 보기 때문에 준비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최근에 회사 업무를 하면서도 자주는 아니지만 은근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구글링 하면 나오긴 하지만, 이해를 해야 코드를 변형시켜서 내 코드로 녹이는데 이해하는데 한참 걸리니 참 답답할 노릇이었다. 아무튼 알고리즘을 올 해부터 천천히 공부할 계획이다.
마무리
밥 먹으면서 유튜브로 이것저것 보는 편인데 최근에 "실패와 용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영상을 봤다. 창업으로 성공하신 분의 이야기였는데, 중간에 SNS로 공유하신 영국 시인의 시가 너무 좋아서 한동안 밥 먹을 때마다 계속 생각났다.
"절벽 끝으로 오라"
"할 수 없어요. 두려워요."
"절벽 끝으로 오라"
"할 수 없어요. 떨어질 거예요."
"절벽 끝으로 오라"
그래서 나는 갔고
그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었다
나는 날아올랐다
나는 변화를 싫어하는 성격인데, 고치고 싶은 성격 중 하나다. 2022년에는 호랑이처럼 용감한 자세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